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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물

『무중력 화요일』 + 『언니에게』

by DEM1VN 2021. 1. 12.

『무중력 화요일』 이랑 『언니에게』 를 연달아 읽었는데, 이거 되게 재미있는 조합이네.... 전자는 산 지 한참 되었는데 여즉 완독을 안 했어서 이제야 다 읽었고 (어디서 덮었는지도 모르겠어서 첫 장부터 끝까지 읽었음), 후자는 원래 좋아하는 시집. 간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쭉 공들여 읽고 싶어서. 그런 기분이었다.

뭔가를 알고 말하는 건 아니고 순전히 읽기만 하는 사람의 취향 기반 감상이니....

왜 +로 묶었냐면, 일단 같은 시어가 많이 등장한다. 메인으로 삼는 건 다르지만, 자잘하게 겹치는 게 많아서 연달아 읽으면 재밌을 것이다. 물고기, 눈, 구름, 날개. (상반신이 물고기인 인어 그림 생각이 문득 나네.) 그리고 죽음 / 시공간의 교차 / 환상성 을 양쪽 다 커다란 테마로 삼는다는 게. 둘 다 괴담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알 법한 이미지들도 떠오르고.

둘 다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지만, 더 편안한 마음으로 힘을 풀고 읽을 수 있는 건 무.화 쪽인 것 같다. 일단 모두가 알 만한 친숙한 이미지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멈춤 버튼을 누르고 다시 읽기 시작해도 그 지점부터 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런 이미지. 조금 더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야 하나.... 관통하는 이미지 중에서도 묶음이 명확한 세트는 있다, 하면 될까.

그렇다고 해서 언니에게 쪽이 더 어려운 단어를 쓴다는 이야기도, 상상하기 난해한 이미지들이 많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미지들을 머릿속에서 동시에 연산해야 퍼즐이 맞춰지는 책이라서 읽기 전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할 뿐이다. 그러니까, 덮으면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는 책.

시들이 조금 더 높은 밀도로 엉겨붙은 건 언니에게, 쪽이라고 느꼈다. 시집을 다 읽고 덮었는데, 영화관을 나오는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어. 이 시대의 진정한 VR구나....

맞아, 비슷한 테마라고 했는데, 색은 좀 달라. 무.화 쪽은 명도와 채도가 꽤 낮은 블루다. 한 가지 색은 아니고, 울렁거리는 색. 페르세포네의 블루.... 반짝임, 그런 게 보이는. 눈동자가 파여도 천진한 잔혹함. 괴담으로 치자면 조금 더 직관적인 공포. 간간히 어그러지는 색을 느꼈지만 그건 제 부족함이겠죠.

언니에게는 쨍한 피의 색. 흰 스파크가 번뜩번뜩 튀어 오르는 붉음. 건조하고, 비었고, 흐르고 있는데 멈춘 것들. 그러면서 서늘하고 축축한, 가끔은 파랗게 질리기도 하고. 이쪽은 천진함이나 순수함, 보다는 알아, 그런데 뭐, 하는 느낌을 받았다. (ㅋㅋ) 어린 목소리라도 미래의 화자가 그 당시인 것처럼 속삭이는.... 미래-현재-과거라는 게 분절되지 않고 동시에 겹쳐서 목소리를 내는데, 겹친 몸들도 제각기 풀어졌다, 다시 교차하다, 하는 게 정말 좋았다. 샌드아트처럼 덧칠되는 장면들을 느낄 때는 특히. 크레파스로 그린 풍경에 실사를 콜라주 해서 만든 영상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처럼 머릿속에서 지나감.

나중에 나 다시 보려고 쓰는 거지만 정말 나만 알게 쓰고 있구나. 말다운 말로 풀어 보자면.... 나오는 화자들의 인성을 비교해 볼까... 그나마 덜 아프게 날 죽일 것 같은 건 무.화 쪽이고(...) 아프게 살려 두다가 좀 행복해질 때를 노려 죽여 버릴 것 같은 건 언니에게 쪽 (ㅜㅜ) 내 창문 서성이면서 침입이나 살해로 겁주거나 옆자리에 앉아서 자기 몸 해치는 거 보여 주면서 정신공격 할 것 같다고....

아 또 맞다. 자해 트리거 있는 사람은 언니에게 안 보는 쪽이 좋을 수도...?! 당연히 구체적인 묘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하긴 하니까. 그로테스트하다는 평을 듣기는 하는데, 이건 그.... 날것!!!! (ex. 김언희 시인의 시들...) 계열은 아니고... 정제된 느낌? ~날것~은 내가 현장에서 구르면서 썩은내까지 맡고 있는 거고.... 정제된 건 한 번 편집을 한 영상을 보는 느낌... 저는 후자가 조금 더 취향입니다. (시 취향 : 쌍욕 -100. 섹스 창녀 얘기 -150. 젖무덤 얘기 -100. 성기 얘기 -100. 똥구멍 -200. 노골적인 활자로... 여자 몸을... 데미안 허스트 작품처럼 썰어두는 거 일단 다 취향이 아니라서요....) 전에 읽었을 때는 이게 자해 방법을 묘사한 거라는 걸 몰랐는데 이제 보이는 게 씁쓸하다...

무슨 일이 있었냐면 그 텀 동안 자살캔디라는 게 한 번 트위터를 휩쓸었습니다. 그나저나 공의 경계(...)를 나랑 비슷한 결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언니에게를 좋아할 것 같은데.

- 공의 경계 에피소드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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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작성된 소개글이고, 98년도 시작 작품이니까.... 2021에 보기에는.... 좀 아니올시다 하는 장면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80년대 전기소설과 90년대의 신본격 미스테리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데 이건 다시 읽어 봐야 알 것 같네요...)

(*전기소설: 일상-비일상 전기적 이항, 자연(일상)에 초자연(비일상)이 침입해 오는 형태. 신전기 소설을 공경 작가분이 인터뷰에서 설명한 게 있네요... “판타지나 SF는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어디까지나 무대가 되는 설정은 현대입니다. 작품이 발표될 시대에 속해 있는 거죠. 그 작품이 발표될 시대에 속해 있으면서 살짝 빗나가 있는, if─‘어쩌면’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예를 들면 이 호텔 안에는 사용되지 않는 층이 있어서 그곳에는 평범한 세계와는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있을 수 없으면서도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는 의식의 차이─빗나감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것이 전기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80년대의 전기소설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전기소설은 그렇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그 시대에 속한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시대에 속해 있는 이상 그때까지의 역사는 당연히 반영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있었던 현실을 사실의 기반으로, 그것을 어떻게 픽션으로 재미있게 꾸며 가느냐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지요.” ─ 나스 키노코, 한국판 《파우스트 Vol.2》 인터뷰에서

 

*미스터리 장르 구분 : lazygomtang.tistory.com/266


1/俯瞰風景

여름의 끝, 소녀 자살자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인은 매번 고층 빌딩 옥상에서의 추락사라고 한다.
거리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그림책에서 본 탑 같았다. 달이 밝은 저녁에는, 추락한 소녀들의 유령이 나타난다.
───떨어졌는데도 날고 있다니 얄궂구나, 라고 아오자키 토우코는 중얼거렸다.
그것은 자살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 목숨(命)이라는 것을 느끼는 방법의 하나.
⋯⋯즉, 도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목적이 없는 도주와, 목적이 있는 도주.
일반적으로 전자를 부유, 후자는 비행이라고 부른다고 하는 듯하다───.

 

 

2/殺人考察·前

그것은, 그들이 아직 고교생이었던 시절.
거리에는 엽기살인사건이 연속되고, 밤의 거리는 정체불명의 살인귀를 위해 그 빛을 앗아갔다.
코쿠토 미키야는 료우기 시키와 친해지던 중, 그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시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긍정의 인격인 시키(式). 부정의 인격인 시키(織). ⋯⋯살인밖에 모른다고 하는, 시키(織)라는 소년.
계속되는 엽기살인. 살인현장에 황홀히 서 있는 료우기 시키.
이 고찰의 결론은, 3년 후로 넘어간다.

 

 

3/痛覺殘留

혼수상태에서 눈을 떴을 뿐인 료우기 시키는, 삶의 실감을 가지지 못한 채 아오자키 토우코의 일에 협력하기로 한다.
아사가미 후지노. 그녀에게 입혀진 상처는, 완치된 후에도 그 아픔이 계속된다.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수를 되풀이 하는 소녀는 무차별적인 살인귀로 변모해간다.
무통증. 존재 그 자체가 사회에 부적합하다는 인간. 초능력이라고 하는 '현상'.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모두 왜곡시킬 수 있는 소녀의 '눈'. 그리운 여름 비 속에서, 료우기 시키는 최고의 살해능력을 가진 소녀와 충돌하게 된다.

 

4/伽藍の洞

사고로부터 2년이 지난, 6월.
료우기 시키가 긴 혼수상태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하지만 눈을 뜬 료우기 시키는 이전의 료우기 시키와는 달랐다.
결핍된 감정과, 불확실해져버린 삶의 실감. 무언가, 결정적으로 비어버린 부분이 있다고 느끼는 시키.
유령처럼 멍하니 존재하고 있는 시키는, 면회사절을 하던 병실에서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이름의 마법사와 만나게 된다───.

무엇이든 긍정한다면, 상처는 입지 않아. 무엇이든 부정한다면, 상처 입을 수밖에 없다.
두 가지 마음은 가람의 동. 긍정과 부정의 양끝밖에 없는 것.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 그 안에, 내가 있는 것.

 

5/矛盾螺旋

팔괘를 묶어 사상을 돌려 양의료우기에 도달한다
오늘밤, 상극하는 나선에서 너를 기다린다

 

 

6/忘却錄音

코쿠토 아자카. 오라비를 시키에게서 되찾기 위해 아오자키 토우코의 제자로 들어간, 코쿠토 미키야의 여동생.
그녀가 다니는 전원 기숙사 입사식 여학원에, 잊혀져 있던 기억이 편지로 도착한다, 고 하는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인마저 잊고 있다는 일을, 어찌하여 수집하는 건가.
밀폐된 공간, 외부 세계의 더러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폐쇄적인 학원에, 료우기 시키는 학생으로 침입한다.
봉인지정. 위신의 서(僞神の書)라고 불리는 현상. 흩어지기 전의 통일언어를 쓰는 마술사가, 시키의 망각된 과거를 형상화한다.
영원을 찾고 있다, 라고 위신의 서는 말한다.
하지만, 오랜지색의 마술사는 읊조린다.
───보답 없구나. 영원 따위, 어디에나 있다고 하는데도.

 

 

7/殺人考察·後

과거를 되찾은 자는, 그 청산을 강요당한다.
재래하는 3년 전의 살인귀.
자신이 살인귀란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료우기 시키는, 코쿠토 미키야의 앞에서 사라진다.
료우기 시키를 찾는 코쿠토 미키야. 재발한 엽기살인은 매일같이 되풀이된다.
흑과 백.
코쿠토 미키야는 료우기 시키의 진실과, 3년 전 사건의 진상에 다다른다.

이전에는 관통하는 테마나 이미지, 재등장하는 인물들을 잘 모르고 짧막한 이미지와 분위기로만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래도 좀 보여서 신기하네. 상태 호전도 있겠고, 마지막으로 시간 비워 멈춤 없이 정독한 지는 좀 되었으니……. 사이에 못해도 시집 서른 권은 넘게 더 읽었을 거야. 이 년쯤이니 더 될 것 같긴 한데. 어쨌거나 언니에게를 처음 읽는다면, 온전히 시간을 내는 편이 좋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상상하면서. 분명 처음 읽었을 때의 환희를 기억하는데, 그때 읽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았어. 나중에 읽었을 때는 또 뭘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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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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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감성 풀충전 해서 책 꽂던 중에, 거리 가늠 못해서 칸막이에 모서리에 얼굴이 내리 꽂혔거든. 나도 왜 저기에 박았는지 전혀 모르겠고 (실수로 박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곳에 박음...) 그냥 책을 넣고 몸 일으킨 직후로 몇 초 기억이 비고 충돌만 남았다. ...박아서 까먹은 걸 수도 있음. 식구들 깨울 정도로 박살나는 소리 내면서 갖다박았네. ㅋ...ㅋㅋㅋㅋ..... 박은 게 12:52 기준 5 분쯤 전인데, 코 자체 아픔은 순식간에 가셨거든. 지금은 피부가 얼얼하게 쨍기면서 멍 기운 같은 게 올라오기 시작함. 골도 찌르르 울리고.... 중요한 화상회의 일정 1월에 몇 개 남았는데, 얼굴 정중앙에 멍 생기면 참 볼 만하겠다.... 하필 안경 코 올리는 자리라 안경도 못 쓰게 생겼고... 안경 없으면 한 뼘 너머는 아무것도 못 보는데 큰일임. 일단 지금 기준으론 올리면 아픔. 그래도 안경 쓴 채로 박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 그랬으면 이걸 주절거릴 새도 없이 안경이 아작나서 응급실에 갔겠지.... 안경 부러지는 데에 드는 힘보다는 훨씬 세게 박았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행복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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