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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물

황정은,『연년세세』

by DEM1VN 2020. 12. 31.

■ BOOK LOG

 

제목

연년세세 

저자

 황정은

쪽수

 187pg

출판사

 창비

 

 

I. 여는 글

요약 총평
- 책 난이도 : / 中 / 下  ::  술술 읽히지만 서술 방식상 최소한 두 번은 읽어야 진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 같은 사건도 누구 입을 빌리는지에 따라 돋보기가 붙었다가, 가림막이 붙었다가 한다. 그리고 이건 독자가 어떤 키워드를 들고 이 책을 읽어 나가느냐도 똑같다.
문체 : 좋았다. 단편의 주인공이 달라지면 목소리도 달라지는 게, 특히나 좋았다.  
배경 : 한국, 뉴욕
인물 : 이 정도로 생생한 인물을 마주친 건 정말 오랜만이다.
- 만족도 : 97%

 

저자 정보

1976년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 등을 썼다. 

 

- 2012/2/9 인터뷰

 

기타

- 2020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 연년세세 + 일곱 해의 마지막 + 시선으로부터

- 이 책을 즐기기 위해서는, 완독 후에 본 리뷰를 읽어 주세요! 대단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만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온전히 가져가시려면 제 리뷰를 읽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II. 내용

감상 (요약 대신...)

- 파묘 / 하고 싶은 말 / 무명 / 다가오는 것들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 블로그에 처음 남기는 서평인데, 줄거리를 쓰기 어려운 소설이네. 대신 감상을 짧게 적습니다.

 

(1) 몸에서 몸으로 넘어가는 슬픔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왜 우리는 너와 나로 나눠져 있는데도 힘을 써 묶이고 이해하려 들까요. 가끔은 다정한 사람들이 거울을 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하게 서로의 빛을 담는, 그리고 그 빛을 다시 주변에 나눠주는 용도로요. 그렇게 수많은 곳에서 얼굴을 발견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2) 사랑과 죄는 동시에 범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는 것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니 뒤섞이는 마음을 꼭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인용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

pg

(천천히 추가)

 

외부 정보

1. 588 : 작중 낙태 전문 병원을 영진의 친구들이 부르던 말. 2017년 재개발로 철거된 '청량리 588', 그러니까 구 성매매 집결지가 맞다. 이 단어가 나오는 파트는 정말 충격적으로 잘 썼는데, 목욕탕에서 봤던 몸이 아니라 다른 나체를 보았다고 한영진이 표현함으로서 여성의 '몸'이 성적 대상화 당하지 않았을 때와 그랬을 때를 분리한다. 그러니까, 한영진은 엄마의 성을 생각한 것이다. 성 역시 이순일의 것이고, 그렇기에 한영진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불편해 한다. 앞서 본인의 출산 경험 이야기도 그렇고.... 지금 내 어휘가 부족해서 더 설명을 못하겠는데..., 정말 뛰어남. (72~79쪽)

 

2. 

 

(천천히 추가)

 

III. 뱀발

두서 없는 말

1. 뒤늦게 깨달은 점 두 개.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가 황정은 작가 작품이었어? 그리고 의 그림자의 황정은 작가가 연년세세 작가였다고? 전혀 몰랐다. 나는 작가를 이미지, 향, 색…… 따위로 기억하는데, 이 세 책의 색이 내겐 너무 달랐어서. 우선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는 내 왜곡된 기억 속에 김사과 작가 작품이라고 저장돼 있었다. 두둥. 어떤 느낌이냐면 <나b책> 느낌. 그렇지만 이 다정한 환타지는 굳이 따지자면 윤이형 작가의 새벽 하늘 색과 가까운데 말이지. 어쨌거나 너무 예전에 읽어서 가물가물 했나 보다.

 

(TMI : 의 그림자는 내가 최초로 구매한 이북이다. 2016년 초여름에 구글 북스로 샀더라고. 아마 도서관에서 읽다가 얼른 구매했던 것 같다. 너무 좋아서 택배를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고, 아껴 읽었다.)

 

2. 이 소설은 두 번 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꼭 수록 순서대로 읽어 줬으면 한다.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처음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충격 장치가 많다. 그러니까, '낯설게 하기'를 즐기자는 이야기다. 허겁지겁 읽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순서대로 꼼꼼히 읽어나가다가, 앞의 내용과 맞물리는 구절이 있으면 동시에 펼쳐 놓고 비교해 봐도 즐겁다.

 

3. 단위 의존 명사가 언제부터 붙여 쓰는 게 허용이 되었던가? 책을 읽는 내내 이 의문이 들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4. 읽고 나서 작성한 관계도다. 파묘는 다른 책에 수록되어 있던 작품이라 재독했으나 다른 단편은 일회독에 그친 상태에서 적었고, 다시 읽기 전에 한 번 정리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이름이 있어도 적지 않았다. (한만수 옆의 백인 할아버지는 혹시라도 동성연인일까 봐. (읽으며 썼던 메모. 분명 올해 어떤 단편을 보았다. 호주인가 뉴질랜드인가에 간 아들을 보러 간 부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부부가 차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도 나온다. 딸도 딸린 할아버지와 아들이 동성 연애를 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아들이 사는 집이 아니라 호텔을 잡았던 것 같은데....) 쓰다가 기억이 났다. 음복과 같은 책에 수록된 우리[畜舍]의 환대였다. ㅋㅋ) 하미영은 왜 썼냐면, 사실 세진이 짧은 영어로 나눴을 대화에서 girl-friend가 정말로 애인인지는 모른다는 일종의 여지 같은 게 있지만서도, 작중 묘사를 보면 '여자친구'를 넘어 '와이프'인 듯 해서. 물론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봤다.

 

인물 관계도

 이걸 가족 이야기로 사람들이 볼까요, 라고 작가님이 말하셨는데, 관계도로 직접 보니 새삼 묘하지. 이것은 가족의 이야기지만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이 책에는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아주 낯설고 친숙한 이야기. 수능 강사였으면 낯설게 하기 기법이라고 짚었을지도 몰라. 아주 평범해 보이는 "가족"이 있고, 그것을 통해 개인을 묘사하는 탑-다운 방식의 묘사가 아니다. 개인의 삶에 핀포인트 조명을 비추며 퍼즐을 맞추다 보니 가족인 거지. 다운-탑 방식의 묘사. 자신의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았던 여성에게, 이름을 불러 등장을 선언한다. 이름이 우선 있고, 관계는 나중에. (쓰다 보니 좀 프로그래밍 같군.)

 

 파묘를 처음 읽은 날의 충격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도입부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으로 호명하다가 외조부와의 관계 설명을 통해 모녀 관계임을 알리는, 그 충격. 평생 이름이 없던, 그러니까 홀로였을 때조차 순자에서 누구의 딸, 손녀, 아내, 엄마, 할머니였던 이순일을 개인으로 분리해 내는 일. 사실 한국문학에서 가족과 세대를 이야기 하는 건 흔하다. 하지만 거기에 여자는 없었다. 여자는 언제나 외부에 있었고, 조용했다. 입이 없었다. {82년생 김지영, 음복, 연년세세}의 공통점. 모두 여성을 확대경으로 들여다 봐서, 가족을 '재해석' 한다.

 

 셋 모두 여자들이 읽는다면 아주 흔하고 보편적인 가정의 이야기겠고, 비여성이 읽는다면 불편하리라 장담한다. 그럴 만하다. "너는 몰라도 됐으니까." 부정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이해한다. 사람은 누구라도 나쁜 사람이 되기 싫다. 그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네 의도가 아니라고도. 더 나아가서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아니,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입이 꿰매진 여자들이 몸에서 몸으로 전달해 온 일이다. 너의 잘못이자 너와 공범인 자들의 잘못이 맞다. 이제야 발언권을 획득한 여자들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기분이 드는 너라면, 그런 기분이 드는 자체가 네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꼴이라는 걸 알기를 바란다.

 

 다시, 관계도로 돌아가서. 이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관계도를 들여다 보고 있자니 하나 더 깨달았다. 이 소설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호칭으로서 존재하다 짧게 이름이 언급되거나 나오지 않는다. 이름이 있으면 등장이 없다시피 하다. 어쨌거나 말하고자 했던 건 가계도 말고, 이야기 안에서 가족의 형태로 존재했던 관계들은 대부분 정상 가족 외의 형태를 가진다. 그러니까 진짜 가족. 이 진짜 가족들이 합해져 만든 가족(가계도처럼 거대한)의 정상성은 실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갈아 넣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가족의 여러 모습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정상성은 이면을 보지 않는 자들이 꿈꾸는 허상이라고 지적하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가족(부친/모친/자식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광고에 나올 것 같은)의 형태를 유지한 건 고모-고모부와 한영진-김원상, (구) 이순일-한중언 뿐이다. 앞선 두 가정은 '이순일'이라는 개인을 '순자'와 '엄마'로 치환하고, 노동력을 착취해서 간신히 유지된다. 그리고 당시의 이순일-한중언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장녀인 한영진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선에 뛰어들어 가장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가족 구성과 설정의 인물들이지만, 잘 뜯어 보자면. 정상성이라는 건 뭘까, 에 대한 생각을 또 해.

 (1) 외조부 - 이순일 (외손녀)

 (2) 윤부경 - 미군 : 국제 커플, 이민 1세대의 삶

 (3) 노먼 - 캐서린 : 혼혈, 정체성 부정, 이혼 후 한부모가정

 (4) 한세진 - 하미영? : 동성 연애+동거라고 생각했어요. 친구와의 동거라고 본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가족'이라고 사회에서 보는 묶음은 아님.

 (5) 한만수 - 할아버지? : 한국에 절망한 해외 노동자, 독신으로 우정 유지 중 / 혹은 동성 연애 중이라고 생각

 

5. 모든 것이 망가지고 돌이킬 수 없을 것처럼 보여도 화해와 희망을 이야기 하는 제이미가 좋았다. 새로운 세대로서 가능성을 제시하는 제이미. 그 캐릭터성이 정말 벅차다. (언니)

 

 

 

 

엮어 읽기 

책을 읽으면 다른 책이 떠오를 때가 있다. 같이 적어두면 누군가는 공감해 주려나?

 

 

1) 강화길, 「음복」 :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 대상작.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전승되는 여자들의 이야기. 작품 분위기는 아주 다르지만, 생각이 없는/모르는 채로 남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남편이 공통적으로 등장해서.

 

 

 그리고 연년세세의 딸들은 반복해서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언급하는데, 음복 25pg에 "네가 나를 이해해 줘야지,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 줘." 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작중에서 여자들이, 다른 여자에게 하는 말.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나'는 자신이 낳을 딸이 아무것도 모르길 바란다. "걔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음복, 39pg) 어떤 비극을 모를 수 있는 것은 권력이고, 성차가 만든 축복이다. 음복에서 말했듯. 이 무지에 대한 욕망은, 연년세세에서도 이순일의 입을 빌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안타깝게도 음복에서 넘기고 싶지 않았던 앎은 한영진이 죄다 들은 것 같지만....

무명, 133pg

 

 같은 맥락에서 82년생 김지영도 같이 읽고 싶다. 물론 연년세세를 검색해서 이 변두리의 포스팅을 볼 정도면 이미 읽었겠지만....

 

 

- 윤이형, 「붕대 감기」 : 따뜻한 이어짐, 개인과 개인의 사슬. 한 명씩 조명을 짚어가며 짧은 호흡으로 관계가 이어지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손에 손을 잡고 화면이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했다. 책이 말하는 바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메시지 자체는 공감한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 이순일의 삶과 그의 방 묘사가 포개지는 부분이 참 좋았고 자기만의 방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주 좋았던 구절을 아래 덧붙여요.

 

 

- 장희원, 「우리[畜舍]의 환대」 : 위에 적음. 한만수 생각 나서.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한만수도 별로 안 좋아한다. (싸가지 없는 자식;)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 그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너여야지. / 나를 망가뜨리는 것은 너여야지. / 너밖에 없으니까. / 네가 해야지. 이거. 음복에서 인용한 문장을 보자마자 이 구절이 생각 났는데, 생각해 보니 또 황정은 작가 소설이더라. 여기도 낯선 가족이 나오는데, 구조가 연년세세의 원형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제대로 읽어 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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